스스로 녹음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사람에게, 법이 허용한 '당사자 녹음'은 닿지 않는다. (자료 사진 자리)
6월 22일, 첫 번째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2025년 11월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지정)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10개 단체로 꾸려진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을 통한 학대피해 장애인 권리보장 대책위원회'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1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요구는 하나다. 자기방어와 의사표현이 어려운 학대피해 장애인이 피해를 입증할 최소한의 수단으로, 보호자가 남긴 '제3자 녹음'의 증거능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비마이너·더인디고).
대책위는 탄원서 제출과 국회 입법 토론회, 2차 회견을 예고했다. 이 기사는 그 연속 보도의 첫 편으로, 두 개의 정당한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을 짚는다.
계기 —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 대법원 앞에 서다
2022년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자폐성 장애가 있는 9살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옷 속에 녹음기를 넣어 보냈고, 녹음에는 특수교사가 아이에게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말하는 음성이 담겼다(비마이너). 1심 법원(수원지법, 2024. 2.)은 이 녹음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교사에게 유죄(벌금 200만 원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2025. 5. 13.)은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해 수집됐다고 보아 증거능력을 부정했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지금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같은 결의 판례는 이미 있다. 대법원은 2024년 1월 11일(2020도1538), 부모가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수업 중 발언을 몰래 녹음한 파일에 대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며 아동학대 사건의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용인 사건 2심도 이 흐름 위에 있다. 대법원이 이번에 다른 판단을 내릴지가 논쟁의 초점이다.
법이 지키려는 것 — 원칙의 논리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긴 녹음은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제4조).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녹음을 금지하는 이 원칙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과 통신의 비밀을 지키는 방어선이다. 누구나 언제 녹음당할지 모르는 사회를 막자는 취지이며,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배제하는 형사재판의 대원칙과도 잇닿아 있다.
이 원칙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용인 사건 2심 무죄 선고 때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은 위법한 녹음이 증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판결을 환영했다(비마이너). 교실의 모든 말이 언제든 녹음될 수 있다면 교사의 교육활동과 일상 자체가 감시 아래 놓인다는 우려다. 원칙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말할 수 없는 아이의 자리 — 예외를 요구하는 논리
부모들이 묻는 것은 그 원칙의 사각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의 대원칙은 '당사자 간 녹음은 허용된다'는 것인데, 스스로 녹음 버튼을 누를 수 없고 겪은 일을 말로 옮길 수 없는 사람에게 그 허용은 닿지 않는다. 용인 사건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아이가 4년 전 그때에도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며, 보호자가 구체적이고 분명한 학대 정황을 발견했을 때 남긴 녹음만큼은 증거로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비마이너).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발달장애인과 중증장애인, 영유아, 치매 노인들은 스스로 권리를 찾고 자기방어를 하기 어렵다"고 했고,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CCTV는 소리를 담지 못한다는 점을 짚었다(비마이너·더인디고). 학대의 상당 부분이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말로 이루어진다는 것 — 정서학대의 입증 수단이 사실상 녹음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경험이다.
대책위가 요구하는 것이 '무분별한 녹음 허용'이 아니라는 점도 반복해 강조됐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사람에 한해, 구체적 학대 정황이 있을 때, 다른 입증 수단이 없는 경우로 좁힌 '제한적 예외'다(더인디고).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견에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 제가 본 어느 나라도 비밀 녹음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못 쓰게 하는 입법과 판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비마이너).
법률가의 목소리도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기자회견 하루 전 게재된 경향신문 기고에서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언어로 피해를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녹음은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사실을 붙잡는 중요한 단서"라고 썼다(「그 마지막 소리마저 불법이라면」, 2026. 6. 21.). 그동안 외면해 온 '증거 공백'이 이 논쟁의 바탕이라는 진단이다.
국회에는 이미 법안이 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2025년 11월 18일 통신비밀보호법·아동학대처벌법·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 4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공동발의 18인, 더인디고·국회입법현황). 학대 정황 입증을 위한 제3자 녹음에 예외적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회견에서 "획일적으로 통신비밀보호법 규정을 적용하기보다는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비마이너).
네 법안의 처리 속도는 갈라져 있다. 국회입법현황(2026년 7월 21일 열람 기준)에 따르면, 보건복지위원회 소관인 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은 2026년 3월 10일 상정돼 대체토론을 거쳐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다. 반면 녹음의 증거능력을 직접 다루는 핵심 법안인 통신비밀보호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회부(2025년 11월 19일) 이후 상정 기록 없이 계류 중이다. 예외의 문을 여는 열쇠에 해당하는 두 법안이 가장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한눈에 보기 — 사건과 법안은 지금 어디에 있나
| 용인 사건 | 1심 2024. 2. 유죄(벌금 200만 원 선고유예) → 2심 2025. 5. 13. 증거능력 부정·무죄 → 대법원 계류 |
|---|---|
| 기존 판례 | 대법원 2024. 1. 11. 선고 2020도1538 — 부모의 교실 몰래 녹음 증거능력 부정 |
| 4법 개정안 | 2025. 11. 18. 김예지 의원 대표발의(공동발의 18인) |
| 복지위 소관 2건 | 노인복지법·장애인복지법안 — 2026. 3. 10. 상정, 대체토론 후 법안소위 회부 |
| 법사위 소관 2건 | 통신비밀보호법·아동학대처벌법안 — 회부(2025. 11. 19.) 후 상정 기록 없이 계류(2026. 7. 21. 기준) |
남는 질문 — 선을 어디에 긋는가
이 논쟁은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정리되지 않는다. 통신의 비밀은 모두의 권리이고, 학대를 입증할 길은 말할 수 없는 사람의 방어권이다. 진짜 쟁점은 예외의 요건 설계다. 누구의(의사표현이 어려운 사람), 어떤 상황에서(구체적 정황과 보충성), 누구에 의한(보호자·후견인) 녹음까지 허용할 것인가 — 그리고 그 예외가 교실과 시설의 일상을 상시 감시로 바꾸지 않도록 어떤 안전장치를 둘 것인가.
대법원의 용인 사건 선고, 국회의 개정안 심사, 대책위의 2차 회견이 이 질문에 각자의 답을 내놓게 된다. 이 공간은 그 과정을 연속 보도로 기록한다. 학대 신고·상담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1644-8295), 보건복지상담센터(129), 경찰(112).
※ 자료 출처: 비마이너·더인디고의 기자회견 및 재판 보도, 경향신문 김예원 변호사 기고(2026. 6. 21.), 대법원 판례속보(2020도1538), 국회입법현황 의안 2214349·2214350·2214351·2214353(2026. 7. 21. 열람). 모든 발언은 공개 보도 재인용이며 직접 취재가 아니다. 피해 아동과 가족은 비식별 원칙에 따라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으로만 표기한다. 대법원 선고·국회 심사 등 추가로 확인되는 내용은 후속 보도에 반영합니다.